신냉전의 구축 과정과 특징 그리고 한반도

남과 북의 신냉전 대처법은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인다. 남북 모두 핵무기를 포함한 국방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선제공격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남측은 미국,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으며, 북측은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신냉전을 대처하는 데서 남과 북은 몇 가지 점에서 결정적 차이를 갖는다.

남측: 신전략개념이 뭔지도 모른 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

6월 22일 김성한 안보실장은 간담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순방 일정을 발표했다. 첫 해외 순방 일정이 반중·반러 정책을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김성한 실장은 “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한국의 반중 반러 정책 선회 가능성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논리의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제의 발언은 그것이 아니었다. 김성한 실장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새 전략개념이 어떤 내용이 될지 현재 저희는 전혀 모른다”고 발언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나토정상회의에서 반중·반러 노선을 분명히 하는 나토 신전략이 채택되었다.

12년만에 채택되는 나토 전략개념 문서는 하루 아침에 뚝딱 작성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미 나토 회원국들은 수 차례 내용 검토를 거쳤을 것이며 정상회의 전에 초안이 이미 회람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성한 실장의 발언은 미국으로부터 신전략개념과 과련한 아무런 사전 정보를 듣지 못한 채 나토 정상회의에 불려갔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사실 이런 조짐은 5월 22일 한미정상회의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취임 후 12일만에 정상회의가 열렸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전 정부의 대미 외교에 대한 평가, 정세와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정부의 인식, 그에 기초한 대미전략을 마련한 후에야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상식적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촉진”하기로 합의했다.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켜 봉쇄하는 신냉전 정책의 기본이 되는 논리이다. 또한 한미정상회담에서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전략자산은 핵무기를 탑재한 무기 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 핵무기 배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남측 당국의 신냉전 대처법은 미국의 개념과 전략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측: 지난 해부터 신냉전 정세에 대비해 국방력 강화 추진

지난 해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정세가 ‘신냉전’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발언했다. 이와 같은 정세변화의 원인은 ‘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가르식 대외정책’이며, 그 결과 ‘국제평화와 안정의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 후 일련의 연설과 발언 속에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근원 때문에 쉽게 해소될 수 없다’며 불안정한 정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북은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현 정세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부단히 키우는 것’을 강조한다. 그 누구도 북을 건드릴 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해 시정연설 이후 북은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보다 정확하게’ 비행할 수 있는 반항공미사일, 가장 현대적인 무기체계로 일컬어지는 극초음속미사일 ‘화성 8형’을 시험발사했다. 2022년 들어와서도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고,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7형’을 시험발사했다. 화성 17형은 2017년 11월 발사했던 화성 15형보다 14분을 더 비행했고, 140km를 더 날아갔고, 1800km 더 높이 올라감으로써 실제사거리는 15,000km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 화성 17형은 화성 15형보다 더 오래 비행하고, 더 멀리 비행하고, 더 높이 올라가 실제 사거리 15,000km일 것으로 추정된다.
▲ 화성 17형은 화성 15형보다 더 오래 비행하고, 더 멀리 비행하고, 더 높이 올라가 실제 사거리 15,000km일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4월 25일 열병식에서 김위원장은 핵무기의 둘째가는 사명 즉 선제타격 사명을 언급하며 “어떤 세력이든 군사적 대결을 기도한다면 그들은 소멸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즉 전쟁세력 소멸을 위해 군사력을 부단히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하면 북은 현재의 정세를 국제평화와 안정이 허물어져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으로 인식하며 국제정세 불안정의 원인을 미국으로 지목한다. 따라서 한반도 역시 정세불안정이 지속될 것이며 그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정세 하에서 ‘전쟁세력’이 전쟁 그 자체를 생각조차하지 못할 정도, 전쟁을 벌이면 그들을 ‘소멸’시킬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사고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측 당국의 신냉전 대처법은 전쟁 자체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의 고도의 타격능력과 핵선제공격까지 염두에 두는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군사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주적론 vs 전쟁주적론

남측 당국은 군대의 병사 정신교육 자료에 “북한군과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을 명기했다. 5월 27일 신임 육군참모총장 박정환은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지금 당장, 그리고 미래에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취임사를 했다. 남측 당국은 ‘북한주적론’에 입각해 국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해 10월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우리는 누구와의 전쟁을 론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라고 했다. 북측 당국은 ‘전쟁주적론’에 입각해 국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신냉전 정세하에서 대결상대방을 주적론으로 규정하는 순간 전쟁구조는 더욱 강화된다. ‘북한주적론’은 ‘북한이 소멸되어야 평화가 이뤄진다’는 사고의 산물이다. 상대방을 소멸시키겠다는 사고는 전쟁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신냉전 정세에서 ‘북한주적론’은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북측이 제시한 ‘전쟁주적론’은 상당한 합리성을 갖는다. 핵무력을 포함한 자신의 군사력이 ‘남조선’과 ‘미국’을 무조건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국방정책을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다. 오해를 줄이는 것은 그 자체로 전쟁억지력을 갖는다. 또한 자신을 공격하려고 할 경우엔 ‘남조선’도 ‘미국’도 주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군사 공격이 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국방력 강화정책의 정당성을 어필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서세동점의 시대였던 19세기부터 한반도는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시작하여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으로 이어지는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는 단 한번도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지난 역사를 반추해본다면 현재의 신냉전 정세 역시 한반도를 심각한 전쟁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주적론’은 한반도를 심각한 전쟁위기로 빠뜨리고 신냉전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일말의 고려가치도 없다. 그러나 ‘전쟁주적론’은 한반도가 신냉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을 최소한의 논리구조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남과 북의 구성원 전체가 전쟁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일체의 전쟁 세력을 반대하는 실천을 전개한다면 신냉전 시대에서 남북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이 구축되던 1948년 단독선거를 반대하여 남북 제정당사회단체가 모여 연석회의를 개최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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