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의 예기치 못한 사퇴와 37%에 육박한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이 대선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국민의힘에선 안철수 지지표가 윤석열 후보에 몰려 오차범위 이상의 표차를 장담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야합의 성격이 짙은 단일화로 인해 역풍을 기대하는 눈치다.

높은 사전투표율을 두고도 쌍방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각자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는다.

과연 안 후보의 사퇴와 높은 사전 투표가 대선 판도을 바꾸었을까?

두 가지 다 미미한 변화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안 후보의 막판 지지율 3~5%P는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은 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안 후보가 13~15%P의 지지를 받을 때만 해도 이재명을 떨어뜨리는 데 윤석열보다 안철수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이 상당히 분포돼 있었다. 그러나 윤-안 단일화 협상이 깨지면서 안 후보를 지지하던 10%P는 윤석열로든 이재명으로든 이미 제집을 찾아 떠나 버렸다.

이 때문에 안 후보의 사퇴 직전 지지표가 윤 후보에게 몰릴 것이란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대로 높이 나온 것도 마찬가지. 3월 9일 투표할 사람이 며칠 당겨서 투표한 것뿐인데, 이것이 무슨 변수가 된단 말인가? 이야말로 전형적인 ‘조삼모사’에 속은 ‘원숭이식’ 해석이 아닐까.

하긴 대선 결과에 따라 여야의 신분이 교체되는 거대 양당으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 호들갑을 떨어서라도 표를 단속하려는 심정이야 이해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민중진영을 비롯한 진보정치 일각이 이런 얄팍한 수에 휘둘리는 데 있다.

특히 우리가 촛불의 주역인데 윤석열이 대통령 되는 꼴을 어떻게 볼 수 있냐며, 진보진영 내에서 조차 이재명을 찍자는 부류가 생겨난 점이다.

이는 선거를 단순히 득표 활동으로만 보는 보수 양당에서야 가능한 논리지만, 선거라는 결정적인 공간을 활용해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함으로써 진보정치 역량을 확대 강화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 진보진영 안에서 나올 이야기로는 적절치 않다.

이런 발상은 단순히 선거전술상의 오류라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좀 더 근본적 과오로 보인다.

이재명이 되느냐? 윤석열이 되냐?의 차이는 클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의 당선도 진보 담론이 민심을 움직일 때라야 가능하고, 설사 이재명이 당선된다고 해도 이재명 정부의 개혁성은 진보정치의 견인력 여부에 달려 있다. 진보가 견인력을 갖지 못하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이런 철의 진리를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통해 배우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변화는 그 변화를 주도할 주체역량이 마련될 때라야 가능하다.

혹자는 진보가 주체역량을 마련하지 못했으니 더더욱 이번엔 윤석열이 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든 진보가 주체적 힘을 키워야 적폐세력의 부활을 막고, 개혁을 정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맬 순 없다. 바둑에선 이를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라고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근본이 되는 전제가 있다. 이를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만다.

예로부터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고 했다.

진보정치는 아직 민심을 얻지 못했다. 민심에 다가선 후에야 대세를 만나 천심을 얻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던 소위 386세대가 '6월항쟁' 이후 10년 만에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켜 대세를 형성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탄핵촛불은 새로운 주체세력의 등장을 예고했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박근혜 정부의 궤멸적 타격으로 채 싹을 틔우지 못한 사이 586세대가 다시 집권하는 역사발전의 정체를 경험해야 했다.

이제 686이 되는 현재 여당 주류가 대전환기에 접어든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차기 5년을 봐도 그렇고, 이후 10년 미래를 전망해 봐도 그렇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당선보다 더 절박한 과제는 진보정당이 세상을 바꿀 정치역량을 준비하느냐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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